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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우륵의 가야금 소리와 신립의 비극 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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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의 배려로 국원(충주)에 거주하면서 대문산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그래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 하여 탄금대(彈琴臺)라고 불렀다

 

 

 

 

 

 

탄금대로 불리고 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충주로 진격해오자 신립 장군은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곳 탄금대에  8,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남한강을 등뒤에 둔 이른바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격렬하게 싸웠으나 퇴로가 막힌 군사들은 후퇴도 못하고 전멸하였다

작전의 실패로 부하들이 전멸하자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최후를 마쳤다

 

 

 

 

 

 

팔천고혼위령탑(八千孤魂慰靈塔)

신립 장군과 8천 병사들을 위한 위령탑이 그날의 비극을 달래어 준다

 

 

 

 

 

 

탄금정 정자

 

 

 

 

 

 

 

 

 

 

 

 

열두대,

탄금대 절벽에 열두대가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신립장군이

물가를 12번 오르내리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는 설이 있다

 

 

 

 

 

 

신립 장군 순국한 장소비

 

 

 

 

 

 

열두대 절벽에서 바라보이는 남한강

이곳을 등지고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다

 

 

 

 

 

 

우륵의 가야금 소리보다는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신 8천여 병사들의 비통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국궁장도 있다

 

 

 

 

 

 

탄금대 숲 속의 대흥사 사찰

 

 

 

 

 

 

주현미의 노래  탄금대사연 노랫말이 이곳을 잘 표현해 준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긴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님은 어디 가고 물새만이 슬피 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 새도 우는가요   

가야금도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 진 남한강에 님 부르는 탄금아가씨

 

 

 

탄금대는 우륵의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보다는

왜군과 맞서 배수진을 치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8천여 병사들이

안타까움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신립의 무모한 배수진 작전이 실패하여 아군이 전멸하였다는 혹평을 하지만

계속 왜군에게 밀리던 당시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늦게나마 신립 장군과 8천여 선조님이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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