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도산면 도산사원은 퇴계 이황이 고향으로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운 교육 시설이며
퇴계의 사후에 제자들과 유림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당 뒤편에 사당을 세워 위패를 모시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도산서원

풍수지리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느껴지며 집들이 포근한 자리에 앉아있다

삼문및 상덕사,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를 모신 사당 상덕사를 들어가는 삼문인데 잠겨있다
1574년에 지어졌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를 지낸다

한석봉 글씨의 일화

도산서원 현판은 1575년 선조가 내려주었으며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에게 쓰게 하였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선조가 한석봉에게 네 글자를 쓰게 하면서 도산서원 편액이라고 알려주면 떨려서 제대로 못 쓸까 봐 글자를 한자씩 역순으로 불러 주었다
즉, 院- 書-山-陶 순으로 썼는데 한석봉이 마지막 글자 陶 자를 듣는 순간
자신이 쓰는 글씨가 거장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의 편액임을 알고 심리적 부담감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고 한다

전교당, 1574년에 세워진 강당으로 유생들이 공부하던 서원의 중심건물이다



농운정사는 퇴계의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기숙사이며 글씨는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시습재(時習齋)는 공부를 하는 곳이며 뜻은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즉 "배운 것을 꾸준히 반복해서 익히라"는 의미이다

광명실,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곳으로 책의 습기를 막기 위하여 2층 누각으로 지었으며 현판의 글씨는 퇴계의 글씨이다

장판각, 도산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을 보관하는 곳


연락서재, 농운정사와 같이 도산서당의 기숙사로서 1561년 정사성이 퇴계의 제자가 될 때 정사성의 아버지 정두가 제자들과 같이 지었다 현판 글씨는 퇴계가 직접 썼다

도산서원의 규모가 상당하다 면적이 약 15,000평이 넘으며 경사지에 여러 건물들이 있어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보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넓은 곳으로 우리나라 서원중 가장 큰 규모가 아닌가 싶다

도산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를 가르쳤던 건물로 1560년에 완공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학교 종 아니 서원 북


또 하나의 볼거리 시사단(試士壇)
조선 시대에 출장 과거 시험 (외방별시, 外方別試 또는 외방별과)을 전국의 5곳에서 실시하였는데
1792년 3월에 정조 임금이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명을 내려 퇴계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는 뜻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하여 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였다

도산 별과를 시행한 장소가 앞에 보이는 시사단이다 즉 출장 과거 시험을 보던 장소이다
1796년(정조 20)에 영의정 채제공이 도산별과 기념으로 글을 짓고 비를 세웠으며 현재의 비는 1824년(순조 24) 비각을 다시 지을 때 새로 세운 것이다

원래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 소나무 숲에 비각을 세웠는데 안동댐이 생기자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해 1975년 그 자리에 높이 10m 축대를 쌓고 올려 옮겼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시사단이다


조선의 유명한 유학자이며 성균관사성을 지낸 퇴계 이황 선생이라 제자가 그만큼 많아서 그런지 서원의 규모가 그동안 가본 서원중에 제일 큰 것 같습니다
다른 서원들처럼 배롱꽃이나 화려한 것은 없으나 오래된 고택에서 풍기는 느낌은
몇백 년 전 학문에 정진하던 유생들의 열정이 푸르게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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