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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거꾸로 처 박은 동상과 기억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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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통감관저가 있던 곳을 찾지 못하다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남산 자락 예장동에서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고 위치를 찾았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잊어지는 것입니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사람들이 차를 타라고 했다.

둘이 끌어안고 버텼더니 나를 발로 차버리고 언니를 태웠다

내가 울어대니 나까지 주워 올려 한꺼번에 잡혀 갔다  대만에서 다른 차에 실린 언니와 헤어져 생사도 모른다 (심달연 할머니)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일장기를 밟고 서서 전문을 전부 읽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일제는 남산 자락에 통감관저를 지었다 1대 통감이 안중근에 의하여 죽은 이토 히로부미 (이등박문)이고

2대는 소네 아라스케, 3대가 강제합병 도장을 찍고 이완용과 샴페인으로 이곳에서 축배를 들었다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이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통감을 마치고 1대 조선총독으로 취임 하였는데 취임사에서

"조선은 일본통치에 복종을 하던지 죽든지 하나를 택하라 " 하였다

 

 

 

 

 

 

통감관저와 하야시 곤스케 동상 사진.

관저 입구 왼쪽에 있는 은행나무가 지금도 있어서 관저 위치를 찾았다

 

 

 

 

 

또한 하야시곤스케 동상의 잔해도 발견 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하야시 곤스켸는 일본의 외교관으로 러일전쟁 한일의정서,한일협약, 을사늑약을 주도한 놈으로

특히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을사녹약을 강요하여 성공 시킨 놈으로서 그런 업적등 으로 남작 작위를 내리고

이곳 남산에 살아 있는 놈의 동상을 세웠다 (당시에 일본에서도 말이 많았다고 함)

 

 

 

 

 

                                  이완용                                             데라우치 마사다케                                      하야시 곤스케

 

 

 

 

 

2015년 광복 70년을 기념하여 주변과 땅속에 있던 동상의 잔해를 모아서 땅속에 넣

명판석을 거꾸로 세워 욕스러움을 기리며 치욕의 역사를 기억 하고자 한다

 

 

 

 

 

 

男爵林權助君像 (남작 하야시 곤스케군상)

자세히 보면 곰팡이가 많이 있고 지저분 한 느낌이 있다 침은 밷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

나도 침을 뱉고 싶었지만 요즘 때가 때 인지라 참았다.

 

 

 

 

 

오른쪽의 은행나무가 결정적인 통감관저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통치를 위하여 3명의 통감과 9명의 총독을 두었다

패전 후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패전 직후 한 말이 뜻 하는바가 많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 하건데 조선국민이 찬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삼일절을 맞이하여

뜻 깊은에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 하고 되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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