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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폭군 연산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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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봉구 소재 연산군 묘

 

 

 

 

 

조선 최고의 폭군 통치자로 각인된 연산군 묘소 출입구

 

 

 

 

 

연산군과 부인 딸 사위 그리고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 씨의 묘가 같이 있다

 

 

 

 

묘소 안내도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켜 문신들을 처형하고

억압하며 폭정을 휘두르다 중종의 반정으로 폐위되어 1506년 강화도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그 해 11월 병사하였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강화도에 묻혔다가 6년 후 1512년 12월 폐비 신 씨의 진언으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연산군(1476~1506)과 부인 폐비 신 씨(1476~1537)의 묘

 

 

 

 

 

연산군 지묘 (燕山君之墓)

 

 

 

 

 

릉의 지위는 못 얻었지만 묘 주변에는 문석인 장명 등 망주석등 기본적인 형태는 갖추고 있다

 

 

 

 

 

 

 

 

 

 

 

 

 

 

 

 

 

 

 

 

의정궁주(義貞宮主) , 한양 조 씨로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나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태종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세종이 태조를 위하여 뽑은 후궁인 만큼 빈(嬪)으로 책봉하겠다고 하자

조정의 대신들이 태종과 혼인한 예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안된다고 적극 반대하였다

이에 세종은 의정궁주라는 작호를 내렸다 그래서 조선 역사의 유일한 의정궁주가 되었다

 

의정군주 조 씨 묘가 이 자리의 원래 주인이었고

이 자리에 연산군 묘가 이장되면서 같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의전궁 주의 묘는 봉분이 원형이 아닌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뒤를 길게 빼는

조선 초기의 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연산군 딸 (오른쪽 휘순공주)과 사위 (구문경)의 묘

연산군이 폐위되자 구문경이 이혼을 청하였으나 대신들이 반대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옛날에는 경기도 양주군 해동면이었으나 지금은 서울 도봉구가 되었다

 

 

 

 

 

제향을 지낼 때 제관들이 머무는 건물

영조 51년(1775) 연산군의 외손에게 묘제를 지내게 하고 관아에서 제수도 제공하고

군사를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어머니 죽음 때문에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은 이제라도 용서가 없는 건가요

용서가 안 될 만큼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었지요

그래서 연산군의 묘가 더 궁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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