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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최초의 사립대학교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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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군수였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중종37년 (1542)에 세워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렀으나

명종5년(1550)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하여 왕으로 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액(額)을 받아

최초의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되어 4천여명의 유생들을 배출 하였다

 

 

 

 

 

학자수림(學者樹林), 겉과속이 붉은 적송

 

 

 

 

 

서원 입구의 당간지주,당이란 불화 깃발을 걸던 지주 통일신라시대 작품

이 터가 원래 신라시대 숙수사 절터위에 지어진 서원이라 유물이 몇점 있는 듯 하다

 

 

 

 

 

 

 

 

 

 

 

 

 

 

 

 

 

취한대(翠寒臺), 퇴계가 명명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한다"

 

 

 

 

 

경 자바위,백운동과 유교의 근본 사상인 존경 할 경(敬)자를 주세붕 선생이 직접 새긴 글자이다.

경자가 붉게 칠해진 이유는 아래 사진에.....

 

 

 

 

 

 

 

 

 

 

 

경렴정(景濂亭),주세붕선생이 창건하여 시연을 베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

 

 

 

 

 

경렴정 내부, 초서체 경렴정 글씨는 조선중기 문인 고산 황기로가 스승 퇴계앞에서 쓴 글 

 

 

 

 

 

강학당(講學堂), 강의를 듣는 곳

 

 

 

 

 

명종대왕이 이황에게 사액한 현판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이 머물던 곳

 

 

 

 

 

지락재, 독서를 하던 곳

 

 

 

 

 

학구재,

 

 

 

 

 

일영대(臺), 해시계

 

 

 

 

 

장서각과 정료대(庭燎臺 밤에 관솔등을 태워 서원을 밝히던 시설)

 

 

 

 

 

영정각 (회헌 안향 선생을 비롯한 여섯분의 초상화를 봉안 한 곳)

 

 

 

 

 

출토유물, 땅바닥에 방치하기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데,,,

 

 

 

 

 

 

 

 

 

 

 

경  자가 붉어진 이유, 세조 3년 정축지변 사건으로 참화를 당한 시신일부가 이 곳 죽계천에 수장 되었고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밤마다 울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혼령을 달래려는 의미로 경자에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냈더니

울음 소리가 그쳤다고 한다,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10여리를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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