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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임진왜란의 영웅 권율장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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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權慄) 장군은 1537년에 태어나 의주목사,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7년간 장군으로 3군을 통솔한 도원수를 지낸 명장입니다
특히 1593년 임진왜란 3대 대첩(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의 하나인 행주산성 행주대첩에서 약 2,300명의 조선군으로 3만 명의 왜군을 막아내어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1599년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습니다
 

 
 
 
 
 

장군의 묘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와 보고 싶어 지난 6월에도 왔었지만
벌초가 안되어 숲이 우거져 돌아가고 양주시청에 벌초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찾아왔다

 

 
 
 
 
 

들어서는 외삼문
문이 잠겨있는 것으로 보이나 맨 왼쪽문을 강하게 밀면 열린다

 

 
 
 
 
 

초가을 장군 묘의 풍광이 좋다

 

 
 
 
 
 

권율장군묘소 비각
비각(碑閣)은 죽은 사람의 사적을 전하기 위하여 세운 비(碑)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누각

 

 
 
 
 
 

"조선국팔도도원수증" 제목만 선명하게 보이고
아래 문장은 잘 보이지 않으나 권철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당시 전과
특히 독산성 전투, 행주산성에서 3만 왜군을 무찌른 업적과 도원수로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의 육상을 수호한 전공이 적혀 있다고 한다

 

 
 
 
 
 

권율 장군의 신도비는 후손들이 비각에 있는 비의 글자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게 되자 1861년 세웠다
비석을 세우면서 먼저 세운 비의 내용을 바꾸지 않고 새겼으나 이 역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영의정증충장권공신도비

 

 
 
 
 
 

제사를 모시기 위한 공간 재실

 

 
 
 
 
 
 

 
 
 
 
 
 

이곳은 권율장군과 아버지, 형 등이 같이 있는 가족 묘이다

 

 
 
 
 
 

묘소를 오르내리는 돌계단이 양쪽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제일 앞에 권율장군 묘, 바로 뒤에 형 권순 묘, 제일 위에 아버지 권철 묘이다

 

 
 
 
 
 

권율장군 묘 양쪽으로는 두 명의 정경부인 좌측에 정 부인 창령 조 씨, 우측에 후 부인 죽산 박 씨 묘가 같이 있다

 

 
 
 
 
 

권율장군묘, 촬영 전에 묵념으로 예를 갖추었다

 

 
 
 
 
 

효충장의협력 선무공신,,,(중략),,, 팔도 도원수 권공의 묘라고 쓰여있고
좌 우에 두 부인이 묻혀있다고 쓰여있다

 

 
 
 
 
 

형 권순 부부 합장 묘,
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행주대첩 당시 한 부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던 중 왜군의 화살을 맞았는데도 끝까지 싸워 왜군을 무찔렀다 한다
선조 왕이 "권율에게 이런 형이 있었던가" 하고 높이 평가되어 후에 통정대부로 승진하고 양주목사로 임명되었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아버지 권철의 묘와 어머니 창녕 조씨 묘
아버지는 권율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돌아가셔서(1503~1578) 아들의 출세를 보지 못하였다
참고로 권율은  1582년 46세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국방에 임하는 권율 장군의 자세
 
도원수(전군 총지휘관) 권율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군의 기세에 놀라 탈영한 수군절도사 배설 장군을 잡아다 참수 한 일과
직무를 태만을 한 수군통제사 원균 장군을 불러다 곤장을 때린 엄벌은 국방을 임하는 군 지휘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는 이순신 육지는 권율이었는데 사후 대접이 이순신 장군에 비해 좀 야박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장군님의 묘를 찾아 예를 갖추고 나니 못한 숙제를 한 것 같습니다
 

권율장군묘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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