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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중공군 이곳에 잠들다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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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파로호는 1944년 일제 강점기에 전력생산을 위하여 화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인공호수이다

원래 명칭은 화천호(華川湖) 또는 대붕호(大鵬湖)라고 불렸다

 

 

 

 

 

강원도 화천 파로호 안보 전시관

 

 

 

 

 

 

 

 

 

중공군은 북괴군이 수세에 몰리고 패전을 계속하자 1950년 10월 19일 중공 정규군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한 인민 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춘계 대공세를 시작하여 우리를 공격하였다

화천지구 중공군 춘계 대공세 전투 모형도

 

 

 

 

 

파로호 전망대

 

 

 

 

 

중공군 대공세에 맞선 우리 국군과 미군은 화천에 중공군이 집결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1951년 5월 24일부터 5월 30일까지 일주일 동안  화천지구를 포위하고 전투를 벌여

중공군 24,141명을 사살 수장하고 7,905명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세웠다

 

 

 

 

 

 

 

 

 

 

화천지구 전투로 사살되거나 익사 수장된 중공군의 숫자가 24,141 명이라고 하니

612년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에 세운 살수대첩 (薩水大捷)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멀리 보이는 화천댐, 전쟁이 끝난 후에 한 번도 물을 뺀 적도 없고 유골을 찾으려는 시도 조차 없었으니

물속에 지금도 얼마나 많은 유골과 전쟁 흔적이 있을까 섬뜩한 생각이 든다

 

 

 

 

 

 

 

 

 

중공군 격파 승리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친히 전선을 방문하여 장병들을 격려하고

파로호 (破虜湖,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 친필을 내려 호수 명칭을 개명하였다

 

 

 

 

 

 

 

 

 

 

파로호 선착장

 

 

 

 

 

파로호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의 학도병을 추모하고자 세운 자유수호탑

"우리는 겨레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 "

 

 

 

 

 

이승만 대통령 친필을 보존하기 위하여 1955년 제6사단에서 부대 상징 청성 마크를 넣어 건립하였다

 

 

2020년 중국은 파로호 이름을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엄밀한 내정간섭이고 헛소리다 

대한민국을 침공한 놈들이 요구할 사항이 아니다

   제73주년 국군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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