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4대 문외에도 작은 남소문(南小門)과 서소문(西小門)이 있다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지시로 남소문이 세워졌는데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성내에는 묘지를 쓸 수가 없어
성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묘지가 많은 수철리 (현 금호동)로 가기 위하여 지나던 문이 이곳 남소문이었다
항상 시신 운구가 많아 곡소리가 자주 들리고 일반 백성도 지나가기를 꺼려하기에
어두운 분위기를 생각하여 빛처럼 빛나라고 광희문(光熙門)이라고 명 하였는데
일반인들은 시신이 성 밖으로 나가는 문이라 하여 시구문 (屍軀門)이라고 불렀다
항상 곡소리가 들려서 일반인들이 지나가기를 꺼리는 문으로 통곡문(痛哭門) 또는 시신문(屍身門)이라는 별칭도 있다
또한 청계천의 물이 이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수구문(水口門)이기도 하다
이에 광희문 근처에는 신당이 많이 있어서 신당동(神堂洞)이었으나 갑오개혁 때부터는 한자어가 新堂洞으로 바뀌었다
참고사진
현 한양공고 위치쯤 되는 곳에 무덤 앞에서 우는 어린이가 보이고 위쪽에 광희문이 보인다
여기부터는 성안의 모습이다
슬픈 역사의 문 광희문
1907년에 한국 통감부의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을 반대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광희문 앞에다 놓기도 하고
1880년대에 한양에 콜레라가 유행하여 성내에 살던 많은 어린이들이 많이 죽었는데 시신을 광희문 밖으로 내다 버렸다고 한다
시체를 반출하던 문이라는 나쁜 인식 때문에 근처 전철역명도 광희문역에서 청구역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습니다
단천도 예전 어릴 때 시구문을 알고 있어 언젠가 지나갈 때 어린 마음에 멀리 돌아갔던 추억이 있는 광희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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