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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명성황후 시해범 이두황의 묘 와 단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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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기린봉 이두황 묘

 

 

 

 

이두황 묘 입구

 

 

 

 

 

 

 

 

 

봉분 위와 주변에 말뚝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두황(李斗璜, 1858 1월 11일 ~ 1916년 3월 9일)

 

고종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일본 놈들만 따라다니며 친일 행위를 하다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을미사변 때 우범선과 함께 병사를 데리고

경복궁에 들어가 경비를 서면서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도록

문을 열어 주는 등 도와주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반민족 친일파 놈이다

 

고종의 체포령이 떨어지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도망가서 10년을 살다

1907년 귀국해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특사로 사면되었다

 

그 후 1910년 전라북도 도 장관으로 임명되어 1916년 사망할 때까지

재임 한 만고역적이다

 

 

 

 

 

묘지 부근에도 많은 분노의 말뚝들이 박혀있다

 

 

 

 

 

제단과 망주석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일본식이다

 

 

 

 

 

묘비 또한 일본식이다

 

 

 

 

이두황비(李斗璜碑) 글도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쓴 글씨라니 얼마나 친일파인지 알 수 있다

 

 

 

 

발췌한 비문의 일부,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섬멸하여 야전에서는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고 어쩌고 개소리에

 대인의 온화함을 지녔고 저쩌구~~~"

누가 보면 대단한 장군 같지만 일본 초대 조선총독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쓴 글이다 

 

 

 

 

 

이두황의 묘를 찾고 파 헤치고 단죄비를 세우기까지 :

 

1894년 동학농민전쟁 우금치 전투에서 이두황에게 희생된 차지구(녹두장군 전봉준의 참모)의

아들인 차일혁은 1951년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임무수행 중 전주 기린봉에 있는

이두황의 묘를 찾아 무덤을 파 헤쳤다 목적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부관참시하려 했으나

이미 화장되어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여 뼈가루는 내 던져 버리고 항아리는 깨부숴버렸다고 한다

 

광복 이후 이완용 등 친일파들이 부관참시되었으니 미리 그것을 예상한 걸까 화장한 후 묻혔다

 

그 후 잊고 있다 아들 차길진이 2013 년 다시 이두황의 묘를 다시 찾아냈고 2016년 시민단체들이

산 아래에 입구에 이두황이 죽은 지 100년 만의 단죄비를 세웠다

 

                                              차일혁                           차길진

 

 

 

 

 

 

 

 

 

 

 

 

산아래 길가의 이두황 단죄비 (100년만의 斷罪)

 

 

기린봉 묘지 주변의 넓은 면적의 땅이 아직도 이두황의 후손들 소유라고 하니 놀랍다

이런 역적의 후손들이 재산을 물려받아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

우리나라에 정의가 없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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