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유적으로는 가장 큰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입니다
이곳에서 유적을 해체 보수 작업을 하던 중 백제의 작업자와 현재 대한민국의 작업자가 만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마지막에 그 스토리가 있습니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백제 30대 무왕(600~641) 때 부여(사비) 수도에서 삼한 통일의 위업을 위하여 천도를 하려고 이곳 익산에 왕궁을 지어 사용하다 후에
신라 말 또는 고려초에 건물을 헐고 사찰로 바뀐 이색적인 역사가 있는 곳으로 백제 궁궐의 구조와 기술을 알 수 있는 유적지이다

이 날 이 지역에 폭염 주위보가 내려 땀이 비오 듯하여 큰 유적이 없는 뙤약볕 벌판을 카메라 장비 메고 걷는 것이 무리라 판단하여
배롱꽃 핀 정원을 위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금마저(金馬渚)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건물터, 건물의 규모와 원형 주춧돌을 볼 때 왕궁의 행정 업무를 보던 정청이 있던 터로 보인다

땅속에 있던 백제의 초석이 빛을 보다

왕궁리 유적 출토 기와, 유적 발굴 조사 과정에서 총 30만 점 정도의 기와 편이 출토되었다
기와의 흙과 무늬를 보고 유적의 연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왕궁이 사라지고 절이 들어섰는지 원래 왕궁 안에 절이 같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제 멸망 후에도 통일신라, 고려까지 절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절도 사라지고 벌판에 홀로 5층 석탑만 남아서 없어진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익산 왕궁리 오 층 석탑, 1965년 해체와 보수를 하였는데 금강경판,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등이 발견되었다
석탑의 기초는 가로 16.8m. 세로 12.7m인데 목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천년의 시공간을 넘은 만남, 백제 천석과 대한민국 천석의 만남
5층 석탑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에서 해체 복원 하기로 결정하고 1965년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해체 작업 중 옥개석 이음새로 사용된 꺽쇠에서 千石 (천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어
아마도 왕궁을 만들 때 참여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새겨 둔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놀라운 것은 이때 해체 복원 작업을 하는 총감독의 이름이 김천석(金千石)씨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과 김천석 씨 본인도 석탑에서 자신의 이름과 같은 명문이 나오자 크게 놀랐다고 한다
천 년 전 탑을 세운 천석과 세월이 지나 무너지는 탑을 보수하는 사람이 같은 천석이라니 이런 신비로운 일치가 가능한 일인가
그러던 어느 날 감독 김천석 씨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의사들이 아무리 진단을 해도 병명이나 원인을 알 수없이 사경을 헤매었다고 한다
그러다 탑 상층부를 해체하면서 감춰진 유물들이 출토되자 병세가 호전되어 며칠 후 현장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탑에 손을 대는 것을 알고 백제 천석이 화를 내었다가
그것이 탑을 보존하려는 진정성을 알고 화를 풀은 것 아닐까요
아니면 백제의 천석이 대한민국의 천석으로 환생하여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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