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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백제 무왕과 선화 공주의 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을 알려준 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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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미륵사는 서기 639년 무왕 재위 40년 백제 왕후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왕후는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요의 선화공주인 줄 알았으나 다른 사람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2009년 1월 4일 탑신을 해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륵사의 창건 연대와 창건주를 기록한 사리봉안 기록판이 발견되어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있고 창건주(시주자)는 백제 무왕의 왕후로 좌평(오늘날의 장관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 사택왕후(沙宅王后)라는 사실도 적혀있다
그러면 백제 서동 왕자는 신라 선화 공주와는 언제 왜 헤어진 거야 

 

 
 
 
 
 

미륵사 탑 앞에는 사찰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 깃발을 걸어주는 당건 지주가 창건 당시 형태로 온전하게 남아있다 높이 4.5m

 

 
 

 

 
 
 
 

미륵사지 석탑은 영조 32년(1756)에 간행된 금마지 기록에 의하면 중국과 일본을 통틀어 동방지역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쪽면이 벼락을 맞아 파괴되었으나 그 이상 파괴되지 않아 방치하였다가 1915년 일제 강점기에 또 벼락에 맞아 파괴되었다

 

 
 
 
 
 
 

 
 
 
 
 
 

 
 
 
 
 
 

 
 

 

 

 

일제가 콘크리트를 붓기전의 미륵사지 석탑

 


 
 
 

1915년 벼락을 맞고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일제는 자기네 나라 성에도 보수할 때는 시멘트를 사용하다면서
무려 185톤의 시멘트를 부어 메워 버렸다 
이 상태로 80년 이상 방치 되어오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에 걸쳐 해체 보수를 진행하였는데
(퍼온 사진)
 

 
 
 
 
 
 

185톤의 콘크리트를 치과용 드릴과 작은 해머를 사용하여 제거 하는데만 10년이 걸렸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걸린 문화재 보수 작업으로 20년 동안 해체, 보수 작업을 걸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원래 원형은 알 수가 없어 눈으로 확인 된 6층 일부 까지만 복원 하였다

 

 
 
 
 
 
 

 
 
 
 
 

탑 내부로 들어가는 문

 

 
 
 
 
 

탑 네 귀퉁이에는 동물 같이 보이는 조형물은 오래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어서 변했지만 사람 형태 즉 석인상(石人像)이라고 한다

 

 
 
 
 
 

미륵사가 창건시에는 3 탑 3 금당으로 웅장하고 대규모의 사찰이었으나 사진과 같이 금당터와 망가진 미륵사 탑과 당간만 남아있다

 

 
 
 
 
 

미륵사지 출토 석조물을 보아도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미륵사탑 옆에 하나의 온전한 탑이 보이는데 동탑이 있던 자리에 서탑의 원형을 추정하여 만든 복원 탑이다

 

 
 
 
 

 
원형을 알 수 없는 미륵사 석탑을 남아있는 석재를 참고하여 9층으로 똑같이 만든다고 만든 동원 9층석탑이다

 

 
 
 
 
 
 

지금도 복원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 탑이다

 

 
 
 
 
 

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십자 내부 통로

 

 
 
 
 

대한민국 문화재 복원 역사상 가장 실패한 작품이라는 논란이 있다
원형이 뭔지도 모르면서 불과 2년 만에 만들어진 탑을 인정할 수도 없고 현대식 공법과 시멘트와 강철 부재를 사용하는 것은 복원이 아니라 현대식 건물을 신축한 것이라며
유흥준 전 문화재 청장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독설을 하기도 하였다
 
변형되고 있는 탑의 모습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미륵사탑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그 당시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못 이룬 사랑이 지금도 가슴 찡한 아쉬움을 줍니다
아니면 백제시대 서동도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한건가요
 
 

미륵사지석탑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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