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남한산성
좌익문(동문)은 개축 공사중
송암정터.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고 하산길에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들과 여러 기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 술취 한 남자가 황진이를 희롱 하려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불법을 설파 하였다
이때 감명을 받은 기생 한명이 갑자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자결을 하였다
그후 달 밝은 밤에는 이 곳에서 노래와 통곡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고 한다
바위위애 서있는 소나무(고사목)은 정조가 여주 행차길에 대부 벼슬을 내려 대부송 이라고 부르는 소나무 이다
벌봉으로 나가는 암문
전승문(북문)
우익문(서문)
수어장대, 조선 인조2년 (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군대를 통솔 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4개의 장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밖에는 수어장대 건물 안 에는 무망루 현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망루 현판은 건물 밖 누각에 있다
병자호란과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다
청량당, 남한산성의 축성을 책임진 이회가 기일내에 공사를 못 마치고 자금을 탕진하였다는 모함으로 처형 당했다
그때 그의 처는 남편의 축성에 도움이 되고자 축성자금을마련하여 돌아오던 중 남편의 처형 소식을 듣고 투신 자살 하였다
그 후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 수어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이회와 그이 처의 넋을 달래려 1960년대 까지도 굿을 하여 주었다고 한다
수어장대 입구에 있으면서도 관심조차 안주는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지화문(남문)
망월사
현절사.병자호란때 적에게 끌려가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 처형당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여 숙종때 세운 사당이다.
취성암. 술취한 사람이 앉아 있으면 술이 빨리 깬다는 곳 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으면 가슴속 까지 파고드는 시원 함을 느낄수 있다고 한다
전에 이곳에 醉醒巖 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었는데 어느날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돌식탁을 만들어 놓았다
누가 술 빨리 깰려고 집으로 가지고 갔나 보다 필자 생각
영월정
침괘정.무기제작로 알려져 왔으나 온돌 마루방등이 있는 것 으로 보아 부속 집무실로 쓰인 곳 으로 보인다
1624년에 남한산성 정비중에 발견되었는데 언제 지었는지 기록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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