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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집 활동으로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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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수탈 해가는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하여

사비를 들여 문화재를 구입하여 보관하는 방법으로 나라 사랑을 실천하신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가옥을 찾았습니다

 

 

 

 

 

 

간송 옛집은 서울 도봉구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간송의 종숙부(작은아버지) 양부인 전명기가 1890~1900년대에 지은 집이다

 

 

 

 

 

 

 

간송(澗松) 전형필 1906~1962)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커다란 유산을 물려받아 여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그 재산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때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킨 사람이다

 

일제 때 우리나라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여 지켜냈다

 

특히 훈민정음해례본을 각고 끝에 찾아내어 1,000원에 판매하겠다는 소유자의 말을 듣고 열배인 만원을 치렀는데

당시 만원은 요즘으로 치면 30억 원에 해당한다

 

손에 넣은 훈민정음해례본은 수년간 비밀리에 숨겨두었다가

비로소 해방 후에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많은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지켜낸 것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얼과 뿌리였다

 

(중앙일보 발췌)

 

 

 

 

 

 

 

 

 

 

 

 

 

 

훈민정음체로 간송옛집 현판이 걸려있다

 

 

 

 

 

 

아담한 한옥이 단아하고 예쁘다

 

 

 

 

 

 

 

 

 

 

 

 

 

 

 

 

 

 

누마루 편액은 위창 오세창 글씨의 "옥정연재"

우물에서 퍼올린 구슬 같은 맑은 물로 먹을 갈아서 글씨를 쓰는 집이란 뜻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건물 내부는 들어갈 수 없지만 누마루는 창을 열어두어 예쁘게 꾸며진 공간을 볼 수 있다

 

 

 

 

 

 

 

 

 

 

 

 

 

 

 

 

 

 

 

 

 

 

 

 

 

 

 

 

 

 

누마루 아래에 문이 있는데 무엇에 쓰는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창고 용도 아닐까 생각한다

 

 

 

 

 

 

땅바닥에 돌덩어리가 있어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였다가 위를 보니 알았다

 

 

 

 

 

 

지붕 처마에서 빗물이 양철 물받이로 떨어지는데 땅이 패이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였다

 

 

 

 

 

 

여러 기둥 주련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이다

 

 

 

 

 

 

 

 

 

 

 

 

본체 뒤편

 

 

 

 

 

 

 

 

 

 

 

 

마당에 있는 우물, 경후 김단희의 글씨 옥정 현판이 달려있다

도봉산 시루봉 기슭아래 맑은 물이 나오던  이우물은 이제는 메말라 가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라고 한다

 

 

 

 

 

 

마당 옆에 뒷동산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문을 나가보면,,

 

 

 

 

 

 

뒷동산에는 간송과 양부모의 묘가 있으나 올라가지 말라는 팻말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안주하지 않고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한 간송 전형필 선생 같은 분이 계셔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간송 선생께서 수집한 문화재는 성북동 간송미술관과 작년에 개관한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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