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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조선 청백리의 귀감 황희의 반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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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은 조선초기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반구정 정문,입장료 천원(경로 무료)

 

 

 

 

 

 

 

 

 

 

 

 

 

 

 

 

 

 

계란유골(鷄卵有骨)과 계란개골(鷄卵皆骨)

 

황희는 생기는 것을 모두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주어 항시 가난한 것을 알게 된 세종이

어느 날 "오늘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건을 황희대감께 드리라" 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그날 큰비가 내려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가 저녁 무렵 겨우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그나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기록을 처음에는 계란개골(鷄卵皆骨)로 기록되어있었는데  후에 다른 사람이 옮겨 쓰면서

"곯다"라는 한자가 없어서 발음이 비슷한 뼈 골(骨) 자를 써서

계란유골(鷄卵有骨)로 표기되어 한자 그대로 "계란에도 뼈가 있다"라고 제 멋대로 해석되어 둔갑되었다

계란에는 뼈가 없다

 

 

 

 

 

 

 

 

 

 

 

 

 

황희 기념관

 

 

 

 

 

 

 

 

 

 

 

 

 

 

 

 

 

 

 

 

 

 

 

 

반구정(伴鷗亭),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으로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푸른 물이 아래로 흐르고 송림이 울창한 경치를 보여준다

 

 

 

 

 

임진강변에 군사시설이 있어 모자이크 처리 하였다

 

 

 

 

 

 

 

 

 

 

 

 

앙지대는 황희선생의 유덕을 우러르는 마음을 담아 후손들이 반구정 옆에 육각정을 지었다

 

 

 

 

 

 

 

 

 

 

 

 

북한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보내던 송전선로

 

 

 

 

 

 

 

 

 

 

 

 

황희선생 영당,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황희 영정, 1363년(고려 공민왕 12) 개성에서 태어 나서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등을 지내고

당 시대에 보기 힘들게 장수하시고 1452년(문종 2)에 90세에 서거하셨다

 

 

 

 

 

 

경모재, 재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최고의 청백리로 회자되고 있는 방촌 황희 선생은

각박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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